언론 속 함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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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누나 돌보며, 복지사각·편견 마주하다 “생애주기별 장애아동 부모 고민 해결”…‘함께하는 우리’ 홍정봉 (20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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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10-05 14:38 조회8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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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부모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세상을 떠난 후에 세상에 홀로 남겨질 아이들입니다우리는 이런 부모의 마음을 담아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위치한 함께하는 우리’ 사무실에서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홍정봉 대표는 함께하는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장애아동의 가족이 생애주기별로 고민하는 모든 것을 시스템화해 장애아동의 부모가 걱정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고장애인에게는 더욱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 하겠다는 기업의 의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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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봉 대표가 ‘함께하는 우리’에 대해 설명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발달장애 아동의 부모가 나이대별로 고민하던 부분을 선제적으로 접근,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를 개발해 반영했다”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홍정봉 대표는 최선을 다해 장애인과 그 가족의 조력자가 될 것이라며, “장애인이 태어나서 노년기가 돼 죽음에 이를 때까지

 함께하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곁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누나 돌보며직접 마주한 복지사각지대와 편견

 

홍정봉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겪어야만 했던 복지의 사각지대와 편견을 직접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던 

환경에서 자랐다홍 대표가 태어나기도 전에 가난 때문에 큰 형이 세상을 떠났고이후 태어난 누나가 다운증후군이었으며그의 엄마 역시 후천적으로 척수장애를 앓았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어머니 나이가 85세다당시 아들을 하늘로 보내고뒤이어 태어난 딸이 장애인이니 그 당시 사회적인 시선이 얼마나 좋지 않았겠나라며, “아버지가 먼저 순천에서 서울로 올라가 양장점에 실을 공급하는 일을 시작했고어머니가 뒤따라 올라갔다. 24시간 기계 한 대로 독한 염색약을 다루는 일을 하다 보니 어머니 척수에 신경다발종양이라는 병이 생겼고수술 이후 하반신 마비가 됐다그때가 내가 중학생 때였다고 털어놨다.

 

더욱이 홍 대표의 누나가 발달장애인이다 보니 누군가는 학교에서 누나를 전담 마크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홍 대표는 자신을 일컬어 집안의 보험과 같은 존재였다고 표현했다집안을 일으켜 세우고형제를 돌봐야 하는 장애인을 둔 가족의 비애가 이 단어에 함축된 것이다.

 

홍 대표는 “1980년대만 하더라도 서울에 특수학교가 1~2개 있었을 뿐이고특수학급에 대한 개념조차도 없었다장애인 인권이 현저히 낮았다, “누이와 내가 2살 차이인데함께 학교에 보내기 위해 누이는 1년 늦게나는 1년 일찍 입학했다학교에서 누이가 똥을 싸면 내가 다 치워야 했고아이들이 복도에 빙 둘러서서 누이를 놀리고 있을 때도 내가 구해야만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이유로 홍 대표는 처음에는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너무도 고통스러운 유년시절을 겪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그는 자기 일을 가리켜 운명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지만입학금이 없어 대학교 입학이 취소됐다그래서 먼저 돈을 모으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인천 송도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며 하루에 45000원을 받았다한 달 근무를 다 채우면 140만원을 벌 수 있었고야근까지 하면 50%를 더 얹어 줬다주말에는 웨딩홀에서 사진과 비디오 촬영을 했다. 3개월 동안 스튜디오를 쫓아다니며 배웠는데일하니까 7만원씩 주더라당시로서는 큰돈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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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봉 대표가 ‘디오션(The Ocean)’이라고 이름 지은 루프탑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직원이 행복하고, 서비스 이용자가 즐거운 회사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중기이코노미

 

이어 그는 어렸을 때는 삶에 대한 생각이나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성장하면서 이 일이 나의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장애인과 그 가족이 겪고 있는 아픔과 비애를 잘 안다내가 더 공부해서 뭔가를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 일을 시작한 이유를 밝혔다.

 

특수교육학과에 입학한 그는장애인운동재활학을 복수전공했고그동안 일하며 모은 씨드머니로 발달장애인의 인지발달 교육을 해주고 재활도 시켜주는 지원센터를 개원했다고 한다홍 대표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그는 “2000만원에 월세 40만원인 40(약 132규모의 공간을 얻었다첫 고객이 소두증을 앓던 아이의 어머니였는데앉아 이야기하다 보니 이미 다 내가 겪었던 거더라파노라마처럼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상이 됐다그러다 보니 상담이 저절로 됐다, “그 어머니가 또 다른 분들을 소개해 주면서 지금의 센터로 발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객과의 신뢰가 쌓이며한 명이었던 이용자는 6, 12명으로 점점 늘었다그러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이들을 믿고 맡길 보육시설이 필요했던 어머니들은 각각 500만원씩 출자해 장애인 전담 어린이집을 개소하는 데 힘을 보탰다. ‘함께하는 우리의 시초인 셈이다.

 

홍 대표는 당시에 인허가를 잘 안 내줘서 장애인 50%, 비장애인 50%를 받는 통합어린이집으로 허가를 냈다하지만중증 장애인들이 있는 곳에 비장애인들이 올 턱이 있나이런 상황을 모르는 지자체에서는 왜 장애인만 받냐는 압박을 해오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경기도에서 함께 감사를 나왔다그때 고양시의 보육시설을 담당하는 주무관의 조카가 발달장애인이어서 이런 사정을 잘 알더라관련자들과 한 시간 넘게 얘기하며 예외 조항으로 허락해 달라고 함께 설득했다결국 특례를 받아 인정받을 수 있었다순탄하지 않았던 사업 초기 이야기를 털어놨다.

 

이어 아이들이 자라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서 또 부모의 고민이 시작됐다그래서 내 급여 일부와 어머니들이 모아준 돈으로 방과 후 센터를 만들었다,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중심이 돼 풀어보자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나이대별로 고민하던 부분을 선제적으로 접근해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를 개발해 반영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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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부터 원예 치료, 태권도 훈련, 음악 수업. <사진=함께하는 우리>

 

요람에서 무덤까지까지 책임원스톱 가족 통합 지원시스템

 

함께하는 우리는 고양시뿐만 아니라서울김포인천파주 등 각지에서 모여들기 시작해 500명의 장애인이 이용하는 9곳의 센터 규모로 발전했고처음 개관했던 26년 전에는 한 명이었던 직원도 60명으로 늘었다.

 

마치 빌리지(Village)’처럼 일산동구에 7곳의 건물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교육센터는 발달장애 유치학교 심리교육을 위한 아동 발달센터 발달장애인 방과 후 센터 발달장애인 성인 주간 활동센터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원 발달장애인 고용지원연구소 등으로 나뉘어져 있고아동청소년팀성인팀으로 세분돼 있다오는 111일에는 뇌병변센터와 24시간 융합돌봄센터를 개소할 계획이고, 2년 안에는 발달장애인 노인요양센터를 열 예정이다.

 

홍 대표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만 18세가 되면 이전에 배웠던 것도 퇴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그래서 주간활동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무상으로 다시 교육을 해준다오후 3시부터는 4시간 동안 예술·체육 분야 활동을 한다, “4년 전 오픈한 평생교육원에서는 2~3가지의 수업을 무상으로 진행한다즉 복지돌봄노동이 혼재된 프로세스로 돌아가며자투리 시간에는 문화센터 활동도 이뤄질 수 있도록 신경 썼다고 말했다.

 

직업 관련 프로그램도 각자의 특기를 고려해 발전시킬 수 있도록 고도화했다홍 대표는 보호작업장과 같은 사회복지시설은 제조원가를 낮추기 위해 외진 곳에 공장을 짓는다어렵게 자리가 나 취업을 해도 출퇴근이 힘드니 중간에 관두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민간기업의 경우에는 장애인고용법에 의해 직원의 3.1%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하지만고용 효율성이 낮다 보니 기업에서는 과태료를 내고 마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며 반드시 발달장애인이 종이접기와 같은 단순 작업만 할 필요성은 없다이들도 직업훈련을 시켜 직무개발을 해 다양한 방면의 기업과 매칭할 수 있다, “우리는 사회적기업이나 50인 이상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체육 쪽으로 접근해 연결해 주고 있다월급을 모두 밥값으로 내더라도 갈 곳이 없어 가야만 했던 곳이 아닌자신의 특기를 개발해 적어도 한 달에 100만원 정도는 벌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함께하는 우리에서는 40명의 장애인 태권도 선수를 기업과 매칭했다이들은 태권도 시범단으로 활동하기도 하고장애인 올림픽생활체육 대회에 나가기도 한다또한전국 발달장애인 회원사에도 이런 고용 프로세스를 전수해 태권도 선수단으로 300명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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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우리’ 전경. 7곳의 건물에 9곳의 센터가 있는 이곳에는 500명의 장애인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사진=함께하는 우리>

함께하는 우리의 다음 스텝은 미술작가를 배출하는 것이다뇌병변 중증장애인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그리고이들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사회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홍 대표는 그들의 재능을 살려 기업과 연계해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지역사회와 연대도 하면 장애인이 살아갈 사회가 혁신적으로 변할 거라고 내다봤다.

 

15년 전부터는 평생돌봄서비스도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장애인을 둔 부모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내가 죽고 나면 아이는 어떻게 되는가이다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아동 부모와 함께하는 우리가 부모의 사망보험금을 50%씩 낸다이를 통해 부모가 사망하더라도 평생 돌봐줄 수 있는 서비스를 완비했다.

 

사회적 문제 해결 사회적기업기업가 마인드로 치열했으면

 

사회복지학으로 석사를 취득하고경영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홍정봉 대표는 사회복지 영역도 경영자 마인드가 투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렇지 않으면 서비스 퀄리티가 현저히 떨어지고확장성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2007년도에 사회적기업으로 인정받은 함께하는 우리의 홍정봉 대표는 경기도와 고양시에서 사회적경제협회 협회장으로 지내며 느낀 바를 가감 없이 전했다그는 사회적기업이란 말 그대로 좋은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의미있게 쓰는 기업이라고 정의했다하지만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지원금이 없으면 당장 도산 위기에 처한 기업이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쓴소리했다.

 

홍 대표는 직원의 급여가 최저수준에 머물러 있거나 지원금이 끝나자마자 바로 직원들을 구조조정을 해야만 하는 기업들이 많다문제는 R&D와 홍보 비용까지 몇천만원씩 받는데도 정체하는 것이라며, “사업계획서는 기가 막히게 잘 써서 보조금은 잘 받지만그다음이 없다그러면 계속 고용도 안 되고고급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확률도 현저히 떨어진다기업가 역시 마찬가지다곳간이 비면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사회적 문제를 풀려고 했던 사람이 나중에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보조금이 없더라도 사회적인 문제를 풀고회사를 제대로 만들어 보겠다는 사람이 사회적기업을 하길 바란다사회적기업도 기업이고조직이다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면경제적 가치는 어떻게 추구할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의미에서 함께하는 우리가 나아갈 방향도 명확하다고 홍 대표는 말했다바로 직원이 행복하고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즐거운 회사다그래서 센터마다 인테리어에도 신경 써 안락함과 편리성을 강조했다본관 루프탑에는 바비큐장과 와인바가 있는 90(약 297규모의 디오션(The Ocean)’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부모가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홍 대표는 우리가 아이를 맡아줄 동안에 잠시라도 부모가 편안히 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공간을 설계했다, “앞으로도 우리가 더 좋은 세상을 이루기 위해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함께하는 우리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포부를 밝혔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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